벌써 교사등대지기학교 마지막 7강 강의입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은 것 같다’고 7번의 강의를 비유하신 한 수강생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간의 강의들은 나름의 빛깔이 조화롭게 어울린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강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대표님의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이 되었는데요, 마지막 강의라서인지 평소 못 뵙던 분들도 속속 강의장으로 도착하시네요.
송인수 대표님은 그간의 강의를 종합하며, 좋은 교사라면 왜 나는 10년이 지나는데도 교사로서의 성장이 더딘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운을 띄우셨습니다. 교사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는 사실 구조적 원인들이 존재하는데요, 행정 중심의 학교 구조와 입시 경쟁 체제가 바로 그 원인입니다. 이로 인해 표준화되고 반복적 행동, 심화되는 단순 고강도 노동, 수업 탁월성보다는 관리 업무의 정확성과 민첩성이 교사들에게 요구되고, 문제의식의 실종, 독서 의욕의 결핍, 내용적 전문성 결핍, 학생과의 개별적 만남의 단절, 무뎌짐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5강 강의에서 김상봉 교수님께서 “한국의 교사들의 가장 큰 문제들 중의 하나가 그들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학교는 교사에게 지식인 또는 지성인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시험 성적만 올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사들은 점점 더 참된 지식과 교양에서 멀어진다.” 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입시위주, 행정 중심 학교 속에서 일반 교사들은 “단순, 반복, 고강도 업무에서 떠나고 싶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욕구를 자연스레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반응은 “그래, 힘을 내시오. 힘을 내서 국가 가 요구하는 일을 해주시오. 그렇다면, 당신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즉,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마음의 문제를 풀어주겠소!”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장이 되는 승진 제도를 도입하여, 요구에 성실히 응하는 교사들에게는 학교에 머물되 아이들과의 만남을 단절하는 것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것이 바로 교원 정책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원의 낮은 전문성의 문제는, 연수에 대한 교원의 낮은 참여율이 아니라, 교사들에게 ‘가르침의 고뇌’를 유인하는 구조를 짜 주며 그 속에서 자기 한계에 직면하도록 교사의 일상을 재조직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연수를 많이 시킬 것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침의 고뇌’를 교사들로 하여금 체험토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교사들의 마음이 아이들과 가르치는 일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묶어 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고민이 생략된 가운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것으로라도 하자는 발상은 오히려 교사를 가르치는 일에 더욱 마음을 거두게 하는, 국가의 교원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답지 않은 태도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교사들은, 교사로 쌩쌩하게 살려고 한다면 현재 우리 교원에게 주어지는 교원 정책의 반대쪽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드는 찰나, 송대표님은 자신의 애송시로 꼽으신다는 양정사 선생님의 「중학교 선생」이란 시를 읽어주셨습니다. 시를 읽으시면서 눈가가 촉촉해지시는 걸 보니,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합니다.
중학교 선생
어린아이에서 사춘기로 고통스럽게 진입해 들어가는번민 많은 아이들을 가득 싣고슬픔의 캄캄한 터널 속을 빠져 나와 달리는성장의 급행 열차가 잠시 멎는시골의 쓸쓸한 간이역 같은 중학교 거기 몇 십년씩이나 서서손을 들어 달리는 그 기차를 멈추게 하고멎은 기차를 또다시 출발시키는해마다 늙어가는 기차역원 같은,돈도 명예도 없고 있었던 실력도 오랜 세월 쓰지 않아 녹이 다 슬어버린허름한 중학교 선생 스치며 지나가는 아이들의 속력은 너무 빠르고 바빠몇 년 지나면 마침내 아무도 찾지 않고 잊혀지는 중학교 선생 <아이들의 풀잎 노래>, 창비, 1993 |
어떻게 우리 교사는 만남이라는 교육 본질의 가치를 붙들고, 매일 씨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나의 열심이 아이들과의 이별이라는 역설의 늪에 빠지지 않고, 나의 축적된 교육 경험이 아이들을 윤택하게 하며 그것이 동시에 나의 기쁨이 되는 그런 선순환의 기쁜 과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학생들 개개인을 수업과 교실의 생활 전반에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만남의 끈을 반드시 확보하고, 결코 다른 급한 일에 양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사로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 원천일 것이니까요. 그런 만남을 방해하는 학교 안팎의 잘못된 환경이나 제도 요인과 싸워서 자기 마음을 지켜 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송대표님께서는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의 대표로 교사운동을 주도하셨던 경험이 있으시기도 한데요, 그간의 교사운동의 역사에 대해서 짧게 짚어주셨습니다. 70-80년대는 교사의 정체성이 살아있고, 학생들과 인격적 관계가 유지되던 시기였지만 부패, 반민주와의 싸움이 교육계 이슈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때 전교조 등장,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 이루어졌지요. 2000년대는 교사에 대한 직업적 정체성이 흔들리고,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도전 시작되고 전교조 합법화 이후, 교직사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면서 좋은교사운동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는 학생들의 입시 고통이 극에 달하고 학교 폭력이 심해졌으며 학부모들의 사교육 걱정과 부담이 팽창하여, 여러모로 답답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교육은 형체만 남고 무참히 망가져 교사들이 극도의 체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70-80년대 교육 운동가들이 에너지 상당 부분 소진한 상태이므로 새로운 운동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가치로 무장된 교사들이 등장할 것이라 전망하시며 다음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교육의 모순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방치하지 않고, 이것을 해결하는 일에 나서는 자로 자임한다. 2.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동의하지 않으며, 교육이 나갈 방향을 미리 내다보고 그 미래의 가치를 오늘 교실과 내 생활에 앞당겨 살아가기를 자임한다.
3.교육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만, 내가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미시적인 교육실천이 바로 모순에 대답하는 가장 핵심적인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4.교사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교육본질과 아이들의 이익을 행동과 발언의 제1가치로 두려 한다.
5.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승진과 급여 등 외적 인센티브에 마음을 뺐기지 않으며,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늙어감을 명예요 자랑으로 생각한다.
6.합리적인 소통, 겸손과 포용, 그러나 문제 근원에 대한 정직한 대결을 추구한다.7.교육의 미래적 가치를 유보하지 않고 오늘 나의 일상에서 살아냄으로, 지치지 않고 운동한다.8.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교실을 활짝 연다.
이런 가치로 무장된 교사들이 나타나면 반드시 새로운 교사들의 운동은 시작될 것입니다. 이 운동이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지만 뜻에 동의하는 1000명의 교사들만 있으면 역사는 시작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강의를 듣는 저희에게도 힘이 생깁니다. 기존 교원단체들과는 경쟁적 관계가 아닌, 보완적 관계를 이루며, 실험적 선도적 역할을 통해서 시대적 흐름을 움직이는, 새로운 교사운동에 대한 꿈이 꿈틀꿈틀 샘솟습니다. 학교 안에서, 입시 경쟁구조와 대결하는 총체적이고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새로운 교원 운동. 이것은 교사 자신에게 수고와 헌신을 요구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에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그 일이 교사의 삶과 무관한 별도의 수고가 아니라, 참여하는 교사들에게 교사됨의 본래적 의미, 직업적 존엄성, 탁월한 전문성, 깊은 인격적 만남 등을 깊게 경험하게 하는 일일 것을 믿습니다. 6월22일- 23일, 졸업여행에서 새로운 꿈을 꾸길 기대하며, 그간의 부족한 강의스케치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