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교사입니다. 어른인데다 교사이기까지 하니 상담하는 아이들 마음에 입장 허락을 받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입장조건이 까다롭기도 하구요. 이런 과정들 속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들의 눈높이로, 또는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어른이며 교사로, 또 상담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상담자로 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이 일이 부모의 일, 농부의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는 일이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참 신기할 뿐입니다. 상담 받는 이에게 제 2의 부모가 되어 성장과정에서 제대로 받아야 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 즉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 이 세상 수많은 것들에 대한 가치관 심어주기 등등... 농부의 일은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상담일을 하면 할수록 농부의 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농부가 토양을 건강하게 준비하고, 씨앗을 심고, 싹이 움터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적절하게 보살펴 주듯이, 상담자는 상대의 마음을 듣고, 그 마음에 희망과 온기의 씨앗을 심고, 묵묵히 관심을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어야만 싹을 틔우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가 요청하는 것에 적절하게 반응해주며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상담자든, 부모든, 농부든 모두 긴 과정을 거치고, 많이 기다리고, 많은 변수와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상담자와 부모의 역할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것!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계속 배우며 다듬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지라 매번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가게 됩니다.
내 일 중 하나인 마음 듣기는 학교 밖에서 상담을 할 때와는 달리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다 똑같다라는 아이들의 인식, 비밀보장의 한계 등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내가 솔직하고 자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이면의 모습을 알아보고 비춰줄 때 아이들은 놀라워하며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일, 기다리기. 사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힘듭니다. 때때로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긴 한 건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기다리기 선수가 되고 싶은데 실제로는 내가 미친 영향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바심을 치고 애타하다 지쳐서 맥없이 가라앉아 있곤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한 번 기운 차리게 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가출을 하고 다시 등교한 학생이 상담실에서 함께 한 1시간 내내 별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갔던 일이 있었고, 그날 그 아이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아이와 마주쳤는데, 자기 친구를 보며 “야 너도 저 샘한테 상담 받아” 라고 그러더라구요.
그 이후로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질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자, 성급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특별한 어떤 것을 주려고 하기 보다는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 내가 주고 있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상대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성급히 실망할 일이나 내 기대를 저버렸다는 부담감을 상대에게 안겨줄 일도 줄어들게 되어 한결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 중 또 하나의 큰 부분인 적절하게 반응해주기, 즉 도와주기. 요사이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 등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렇게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첨예하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친구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참 거칠게 반응하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만큼 아이들 마음에 여유가 없고 감정이 딱딱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딱딱한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풀어주고 따뜻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시간과 공을 들여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초점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그 아이의 삶과 상처들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아이가 힘들고 아플 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그런 경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있게 됩니다. 이것은 감정 차원의 일입니다. 그 아이의 현실을 바꿔주는 것은 어렵고 또 적절한 방법이 아닐 때도 많습니다. 학교가, 교사가, 상담교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들의 마음, 감정을 살펴주고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 아이의 꺼져있는, 식어있는 감정을 살려내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풀지 않게 되고 더 건강한 방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주고 그들의 상처를 살펴줄 때 그 아이들의 뾰족하고 화난 마음이 누그러들고 온화해집니다. 이 때 그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면 교훈이나 바른 길을 찾게 해야 제대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일일이 손을 대고 거둬주고 품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상담자는 나서서 먼저 각광받고 인정받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처럼 자신이 할 일을 하고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또 그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을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서게 하고, 또 학교나 담임선생님, 다른 선생님에게 마음 붙이게 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뒤에서 힘을 보태는 조력자입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안정된 졸업생이 스승의 날 담임선생님을 먼저 찾는 모습에서 내가 제대로 상담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선 허전함도 있긴 한데, 아무래도 이건 상담자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장시키고 독립시키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지 싶구요. 나는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한 부모라 욕심을 내게 될 때도 많고, 그러다 후회하고 반성하곤 합니다. 또 겁이 나서 주춤거리다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려 쉼 호흡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덜 채워진 상태로 있고 싶습니다. 나의 이런 모습을 허용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아이들과 더 자유롭게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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